부산대학교병원
생명사랑 2026. 여름호
VOL.263
의료특집⑤

또래보다 더딘 우리 아이,
‘경계성 지능’은 아닐까?

최범성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글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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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따라가는 게 버거워 보여요.", "또래와 어울리는 일이 영 서툴러요."
진료실에서 부모님들이 자주 꺼내는 고민이다. 인지 능력이 지적장애로 진단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래 평균 수준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아이들이 종종 있다. 이처럼 어느 쪽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지능 영역을 '경계성 지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이라고 부른다.
경계성 지능, 무엇을 말하나

쉽게 말해, 표준 지능검사에서 측정한 IQ가 지적장애 기준선(IQ 70 이하)은 넘어서지만 평균대(IQ 90~110)에는 닿지 못하는 경우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펴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은 IQ 71~84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이 범주로 분류한다(DSM-5 진단 코드 V62.89/R41.83). 통계적으로 따져 보면 정규분포상 인구의 13.6%가량이 여기에 포함되며, 우리나라만 놓고 봐도 70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흔히 ‘느린 학습자(Slow Learner)’라고도 일컫지만, 법적으로 장애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진단하나

정확한 판단은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이나 임상심리 전문가가 표준화된 지능검사를 통해 내린다. 일반적으로, 성인의 경우 한국판 웩슬러 성인지능검사(K-WAIS)를, 아동의 경우 한국판 웩슬러 아동지능검사(K-WISC)를 활용한다. 그런데 요즘은 숫자로 나온 IQ 한 가지에만 기대기보다, 의사소통이나 사회성, 스스로를 돌보는 능력, 일상생활 기술 같은 ‘적응 기능’까지 두루 살펴야 한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있다. 더불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언어 발달이 늦은 경우처럼 검사 결과를 흐릴 수 있는 요인들이 있는 만큼, 함께 나타날 수 있는 다른 문제까지 꼼꼼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부딪히는 벽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한 번 들은 설명을 곧바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아, 같은 내용을 여러 차례 익혀야 하는 일이 잦다. 저학년 시기에는 별다른 신호가 보이지 않다가, 학습 내용이 부쩍 까다로워지는 3~5학년 즈음부터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머릿속으로 추상적인 개념을 다뤄야 하는 과제에서 벽에 부딪히고,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이나 분위기 속 신호를 놓치는 탓에 관계 안에서 점점 움츠러들곤 한다. 이런 좌절이 쌓이면 사춘기에는 우울감이나 불안 같은 마음의 문제로, 성인이 된 뒤에는 직장 적응의 어려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가정과 사회가 함께 할 일

경계성 지능은 ‘병을 낫게 한다’는 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가진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 스스로 살아갈 힘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둔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일찍 알아차리고 오래 곁에서 받쳐 주는 일이 핵심이다. 집에서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시키기보다 한 단계씩 짧고 분명하게 일러주고, 사소한 성공이라도 아낌없이 격려해 아이가 자신을 긍정하도록 도와주는 편이 좋다. 무리한 욕심이나 성급한 포기는 모두 경계해야 한다. 서로의 배움 속도 차이를 인정하고, 무리 속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아이가 배움에서든 적응에서든 또래보다 줄곧 힘겨워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 보길 권한다. 서둘러 ‘진단명’을 붙이는 일보다 값진 것은, 아이만의 속도를 믿고 곁에서 따뜻하게 ‘기다려 주는’ 마음이다.

자문교수
최범성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범성 교수 사진
진료과목
소아청소년 정신의학, 자폐, 학습장애, ADHD, TIC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