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병원
생명사랑 2026. 여름호
VOL.263
우리가 몰랐던 부산이야기 3

철길 위에 새겨진 53년의 희로애락,
부산 노면전차의 역사

글 이창호 기자
위쪽 서구 토성동 조선와사전기(현 한국전력 중부산지사) 앞(1910년 후반)/아래쪽 동래온천장역 전차(1915년경)
전기를 잡아먹는 괴물, 전차의 시작

부산 노면전차의 역사는 1909년 일본인 상인들이 설립한 ‘부산경편궤도주식회사’에서 출발한다. 초기에는 동래온천으로 관광객을 수송할 목적으로 부설된 증기기관차였다. 이후 1910년 사설 전력회사인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朝鮮瓦斯電氣株式會社)가 이를 인수하면서 전차 체제로 전환되었다. 조선와사전기는 토성동 지점에 소규모 내연 발전 설비를 갖추고 선로 전철화 공사를 진행하여, 1915년 11월 1일 부산우편국(현 중앙동)에서 동래 온천장에 이르는 12.8km 구간에 노면전차를 최초로 개통했다. 당시 전차를 처음 접한 시민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으며, 전선을 통해 동력을 얻어 움직이는 전차를 가리켜 ‘쇠막대기로 전기를 잡아먹고 달리는 괴물’이라 부르기도 했다.

노선의 변화, 동네를 잇다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전차 노선도 확장되었다. 1925년 경상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 부민동(현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 자리)으로 이전하면서, 전차 노선은 보수동을 거쳐 구덕운동장 (대신동)까지 연장되어 남북을 잇는 본선 축이 완성되었다. 이어 1934년 11월 영도대교가 개통됨에 따라, 이듬해인 1935년 2월 영도 남항동까지 들어가는 지선이 신설되었다. 당시 영도대교는 배가 지나갈 때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도개교였기에, 다리가 들릴 때마다 전차 운행이 전면 중단되는 부산만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때는 “개보다 느린 전차”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 노선들은 일제강점기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으나, 결과적으로 부산 근대 교통 인프라의 뼈대가 되었다.

부산의 전력산업과 전차

1937년 일제의 전시 전력 통제 정책으로 한반도 남부 지역의 6개 전기회사가 합병되어 남선합동전기주식회사가 출범했고, 해방 후인 1961년에는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되었다. 전차 운행은 당시의 전력 사정과 직결되어 있었다. 특히 1948년 5월 북한의 일방적인 남한행 송전 중단(5·14 단전 사태)으로 극심한 전력난이 발생하자, 미국 정부가 부산항에 배치한 발전함(艦) 자코나(Jacona)호와 엘렉트라(Electra)호가 생산한 전력으로 전차를 간신히 운행했다. 만성적인 정전으로 전차가 멈추면 승객들이 직접 내려 차량을 밀어 이동시켜야 했던 풍경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시대의 변화와 아름다운 퇴장

6·25 전쟁기에는 수십만 명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유입되면서 도심 교통난이 심화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52년 미국 상호안전보장기획청(MSA)의 원조로 미국 애틀랜타와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운행하던 중고 전차들을 대거 도입했다. 전쟁 이후에도 시민들의 교통수단 역할을 했던 전차는 1960년대 들어 급증한 시내버스와 자동차에 밀려 도심 정체의 원인으로 지목받기 시작했다. 결국 만성적인 운영 적자와 도심 교통 체증 해소를 이유로, 1968년 5월 19일 밤 12시 기점인 서면에서 출발한 마지막 전차를 끝으로 부산의 노면전차는 전면 폐지되었다.

피란수도 부산의 전차(1952)

1952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들여와 마지막까지 운행했던 전차 1대는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 제494호로 지정되었다. 이 전차는 현재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야외 전시장에서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노면전차는 비록 도로 위에서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오늘날 부산도시철도 1호선이라는 대동맥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지나는 길 위아래에는, 식민지의 아픔과 전쟁의 피란길을 묵묵히 함께했던 부산 대중교통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참고문헌
표용수, 『부산 전차운행의 발자취를 찾아서』, 선인,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