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았던 시간,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산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초등학교 시절, 학급에서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던 모습처럼, 퇴직을 앞둔 지금의 저 역시 설렘과 긴장 속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기쁘고 보람된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 기억보다 실수했던 기억, 혹시나 업무를 진행하며 저로 인해 상처받은 분은 없었는지 먼저 돌아보게 됩니다. 반면, 저에게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셨던 분들의 모습 또한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아쉬움과 죄송함,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교차하는 지금, 이 자리를 빌려 부산대학교병원과 함께한 시간들을 되돌아보려 합니다.
병원 근무 초기에는 의욕만 앞선 채 동분서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치 이리저리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듯,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달려가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MRI를 여러대 보유할 만큼 의료 환경이 크게 발전했지만, 당시만 해도 MRI는 매우 낯선 장비였습니다. 가격도 비쌌을 뿐 아니라 인식 또한 부족해 타 대학병원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부산의 대형병원들에도 이미 도입되어 있던 MRI가 우리 병원에는 없어 영상의학과를 전공하는 저와 같은 경우는 설움을 한참 받았습니다. 그래서 첫 MRI가 도입되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밤늦게까지 기사 선생님들과 MRI를 두고 씨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병원 전체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어 있었고 활기도 부족했습니다. 병원에 대한 외부 인식 역시 지금과는 많이 달라 환자들과 언성을 높이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있었고, 논문 투고가 지금처럼 중요시 되지 않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병원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며 의료진과 직원 수가 늘고 의료 장비도 많아지면서 병원 전반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고, 환자 서비스 또한 향상되면서 병원에 대한 인식도 함께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교수들의 논문 활동도 활발해지며 이제는 다른 국립대학병원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듯합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뇌의 혈관투과성을 증가시켜 약물전달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트리올레인과 뇌혈관장벽에 관한 동물실험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아직도 큰 기쁨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우물을 꾸준히 파고들며 실험을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여러 교수님들과 소통하고 의논하며 트리올레인과 뇌혈관장벽 분야에서 학회 발표 및 논문 출간을 34편 할 수 있었고, 이 분야에서는 전 세계 학자 누구와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조심스럽게 자부해 봅니다. 아직 연구의 최종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제 연구가 이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그동안 연구와 실험에 도움을 주신 여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연극 무대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마치고 내려와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 연극에서 주연이든 조연이든 우리는 모두 꼭 필요한 배우였으며 우리가 병원과 사회에 남긴 노력들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앞으로 정년 퇴직을 맞이하게 될 모든 분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도 앞으로 스트레스는 덜 받고 행복은 더한 날들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야호!! 이젠 정말 졸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