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방화... 의료진 ‘침착 대응’으로 참변 막았다
- “소화기·소화전 실제 분사해보고,
환자 피난동선 사전 숙지로 안전하게 대피 시켜” - “ 의료기관 방화, 폭행 등은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사회 인식 자리 잡아야”

뒷줄 왼쪽부터 이기병 응급구조사, 김경업 보안 요원, 박은미 간호사
지난 6월 24일 우리 병원 응급실에서 60대 남성이 방화를 시도해 환자와 의료진이 급히 대피하고 응급실 운영이 10여 시간 동안 차질이 빚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CCTV 영상을 보면 이 남성이 불을 지르는 모습과 응급실 의료진들의 침착한 대응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남성은 응급실 밖에서부터 페트병에 담긴 휘발유를 바닥에 콸콸 쏟아부으며 응급실 안 환자분류소로 들어온다. 이를 발견한 의료진이 페트병을 잡으며 제지하지만, 이 남성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 구석으로 가더니 라이터를 켠다, 불길은 남성의 몸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응급실 안으로 번졌다.
다행히 불은 응급실에 있던 의료진의 침착한 대응으로 1분 만에 꺼졌다. 화재를 발견한 의료진은 “불이야”를 외치며 화재 상황을 알리고, 다른 의료진은 곧바로 소화기를 들고나와 진화했다. 같은 시간 응급실 안 의료진들은 환자들을 대피시키고, 소화전에서 소방호스를 꺼내화재를 진화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결과 방화 당시 응급실에는 약 50여 명의 환자와 의료진이 있었지만, 인명피해는 물론 별다른 시설 피해도 없었다. 이는 평소 화재 진압 훈련 시 소화기와 소화전을 실제로 분사해 본 것이 도움이 됐고, 환자 대피도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환자 피난동선이 설정돼 있는데 직원들이 사전 숙지가 돼있어 큰 혼란 없이 환자를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었다.
소화기로 처음 화재를 진압한 이기병 응급구조사는 “당시에는 좀 많이 놀랐고, 겁도 나긴 했는데 진화를 빨리 하지 않으면 큰불로 이어질 거 같아 소화기를 들고 화재진압을 했다” 며, “매년 병원에서 화재 훈련을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불이 난 것을 알리고 신고한 동료, 소화전을 들고나온 동료, 또 환자를 대피시킨 동료까지 모든 직원이 각자의 역할을 잘 해줘 큰 피해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영모 교수(응급의학과장)는 “응급실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일선의 필수 의료시설이지만 평소에도 주취자 난동이나 폭력, 협박 등 범죄에 상시적으로 시달리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공권력의 적극적인 개입으로의료진은 응급환자 진료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의료기관 방화와 폭행, 협박 등은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사회 인식이 자리 잡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응급실 방화에 신속하게 대응한 직원 포상도 지난 7월 4일 진행됐다. 응급의학과 이기병 응급구조사, 응급실 박은미 간호사와 정필모 간호사, 보안팀 김경업 등 4명에 대해 병원장 표창과 부상이 수여됐다. 응급의학과와 간호부 응급실, 원무팀은 부서 표창과 부상을 받았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의료현장에서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 의사 10명 중 8명이 환자나 보호자의 폭언과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