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병원
생명사랑 2022. 여름
VOL.247
CULTURE&LIFE

역사상 최고의그림은 ···

글 정주섭 부산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벨라스케스와 바로크 미술

역사상 최고의 그림은 누구의 어떤 작품일까? 미술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도 궁금해하는 질문일 것이다. 실제로 1985년 영국 학술지 <일러스트레이트런던 뉴스>에서 미술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회화적 기법도 훌륭하고 미술사 연구에 기여하는 사료적 가치도 가장 높게 인정 받은 작품은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이 최고의 작품에 선정되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1660)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났으며 부단한 노력으로 24세에 궁정화가로 발탁되어 펠리페 4세와 가족들을 그렸다. 펠리페 4세는 오직 벨라스케스에게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할 정도로 그를 신뢰했고, 화가 역시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왕에게 존경을 보냈다. 두 번의 이탈리아 연수 활동으로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채색법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가들의 조각적인 힘을 경험하고서 그의 화력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1520년 라파엘로가 사망한 후 르네상스 미술은 끝이 나고 그 뒤를 이어 바로크 미술이 등장하게 된다. 도시국가와 교황 중심의 지중해 시대에서 강력한 권력을 지닌 국왕 중심의 대서양 시대로 세상이 요동치면서 그림도 그에 걸맞게 변해간다. 즉 조화와 균형의 르네상스 미술을 뒤로 하고 과감한 강조와 생략으로 화가의 주관이 가득 찬 바로크 미술이 탄생하게 된다. ‘바로크’는 포르투갈어로서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 미술 작품이 훌륭하지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왜곡되는 경향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좋은 의미만의 뜻은 아니다. 처음 바로크 미술은 반종교개혁운동으로 시작하였고 이탈리아 화가 까르바죠의 그림에서 보듯이 종교적 주제를 역동적이고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후 17세기에 접어들어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플랑드르 화가들과 벨라스케스의 폭넓은 작품 활동으로 바로크 미술은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등 다양한 분야로 발전하게 된다.

시녀들( Las Meninas. 1656) (그림 1)

수많은 미술 화가들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도대체 어떤 그림일까? 먼저 인물 위주로 그림을 살펴보면 중앙에 서 있는 어린 소녀가 스페인 마르가리타 공주이며 가장 사랑스러웠던 다섯살 때의 모습이다. 공주 주위에 두 명의 시녀와 두 명의 난장이가 있고 뒤에 수행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뒷 벽 거울 속에는 이 그림의 가상의 주인공이 보이는데 펠리페 4세 국왕과 마리아나 왕비이다. 그림 왼쪽에는 큰 캔버스를 앞에 두고 붓과 팔레트를 든 남자가 보이는데 바로 화가 벨라스케스이다. 왕과 왕비보다 자신을 더 크게 당당하게 그렸는데 그만큼 자기애가 강한 화가로서 그의 위상이 그림 속에 반영된 것이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화가 벨라스케스가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공주와 시녀들이 구경하러 들이닥친 것이다. 공주 오른쪽 시녀는 왕과 왕비에게 급히 인사를 하고 있다. 그림 속에 화가가 그려지면서도 거울과 캔버스를 통해 등장 인물 11명이 마치 3차원 공간에 있는 것처럼 조화롭게 표현되고 있다. 역사적 배경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더하여 그려진 <시녀들>은 바로크 미술의 정수로서 200년의 역사를 지닌 프라도 미술관의 보물이 된 것이다.

그림 1. 시녀들(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 벨라스케스. 1656년. 316 x 276 cm. 프라도 미술관

의학과 명화

역사상 최고의 그림에 선정된 작품 <시녀들>에도 몇가지 의학 이야기가 숨어 있다. 공주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수은을 담은 그릇이다(그림2). 당대의 미인 요건 중에 하나인 하얀 얼굴을 만들기 위해 공주는 수은을 흡입하면서 빈혈을 유발하여 창백한 얼굴을 유지하는 것이다. 수은 흡입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면 정말 위험천만한 장면이다. 실제로 공주는 레오폴드 1세와 결혼한 후 산후조리 중 안타깝게도 22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는 두 명의 난장이가 등장한다. 의학적으로는 난장이를 비균형형(disproportionate)과 균형형(proportionate)으로 분류하고 있다. 전체적인 체형의 균형이 맞지 않는 비균형형은 골형성 과정에 결함이 있는 유전성 질환이며 균형형은 성장호르몬 혹은 갑상선호르몬 결핍으로 비롯되는 대사성 내분비 질환이 주요 원인이다. 짙은 녹색 옷을 입은 난장이는 체형의 균형이 맞지 않게 머리가 크고 콧등이 납작하게 보인다. 선천성 연골무형성증(achondroplasia)이 의심되는 소견이며 지능저하가 동반될 수도 있다. 오른쪽 더 작은 난장이는 키는 작지만 전체적 체형은 균형을 이루고 있어 뇌하수체기능저하증에 의한 성장호르몬 분비 장애로 추측이 가능하다(그림 2). 궁정에서 어린 공주의 정신적 육체적 눈높이에 맞춰 시중을 들기 위해 난장이 시녀들이 필요하였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약 360여 년 전에 그려진 작품 <시녀들>은 당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료를 담고있으며 또한 사실적 기법의 바로크 미술로서 많은 예술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피카소 역시 이 그림을 주제로 무려 58점을 그렸을 만큼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능한 빠른 시간에 코로나19 방역이 완전히 해제되어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을 자유롭게 방문하여 비운의 공주 마르가리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그림 2. 수은병을 들고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중드는 두 난장이
참고자료
1. The world’s greatest paintings Our quest for the world’s greatest paintings ends with Diego Velazquez’s Las Meninas. Illustrated London News. 1985 01 Aug
2. Art in Science: Vel¢¥azquez and Dwarfism. Clin Orthop Relat Res 2020 478:31-33
3. ART AND IMAGES IN PSYCHIATRY Las Meninas (The Maids of Honor). ARCH GEN PSYCHIATRY/VOL 2011 68 NO.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