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고정관념과 창의성
의료(medicine)는 과학(science)에 기반한 의술(art)이다. 의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t is long, life is short). 의성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의료는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전통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의료 행위가 기존의 가치에 순응하는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는 경향이 강한 이유다. 의료인들이 대개는 보수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고정관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집단의 잘 변하지 않는 단순하고 지나
치게 일반화된 생각으로서 사람들의 행동을 주로 결정하는 확고한 의식
이나 신념을 뜻한다.
고정관념은 대상이나 개념에 관한 조직화되고 구조화된 신념인 도식에
크게 의존하는데 선천적 요인이 아닌 학습에 의해 형성된다.
사회로부터 학습된 고정관념은 불변하고 당연하며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처럼 여겨지고, 교육을 통한 의미화 과정 을 거치면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느낄 수 없도록 자연화 된다.
한참 전의 일이다. 필자가 속한 대학의 교수 한 분이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다. 업무차 교육부에 들렀다가 문병을 갔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위암 수술에는 위액 제거를 위해 레빈 튜브를 삽입하는 게 상식인데 그 병원에서는 레빈 튜브를 삽입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자신도 레빈 튜브를 사용하지 않겠다며 씁쓰레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일류와 이류의 차이가 이런 것인지 부산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반적으로 위장에는 세균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위액 속의 염산이 강한 산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호주의 로빈 워렌(Robin Warren)과 배리 마셜(Barry Marshall)이 위벽에서 위나선균(Helicobacter pylori)을 발견하고, 위궤양이나 만성 위염 같은 대부분의 위장질환이 이 균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여지없이 깨졌다.
당시 학계에서는 어떤 세균도 위산을 견디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 있어 이러한 발표를 잘 수용하지 못했다. 마셜은 스스로 배양한 균을 마셔 위궤양을 유발하고 항생제로 치유됨을 확인하는 위험스러운 실험을 시도하는 모험도 서슴지 않았다. 1994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위궤양이 대부분 위나선균에 의한 것이며 항생제를 처방할 것을 권고하였고, 2005년도에 로빈 워런과 배리 마셜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는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로부터 공식적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여받았다. 이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국제적 위상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선도자는 모방적 사고가 아닌 창의적 사고를 중심 가치로삼는다.
창의적 사고는 고정관념의 탈피에서 시작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적 사고가 가능한 환경에서 혁신이 나온다. 우리는 국제사회로부터 선진국의 위상을 인정받았지만 과연 그 위상에 걸맞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도와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