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따뜻하다고 해서 봄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삶의 끝에서 삶을 생각한다』
편집 송주연 기자
오늘은 토요일이다.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 책상에 자리를 잡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을 때, 규칙이 없으면서도 은은한 멋이 나는 나뭇결이 느껴지는 갈색의 도서관 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나무 빛깔 도서관 벽에는 세로로 길쭉한 창이 서 있었다. 그 창에는 가로로 줄을 서 있는 연한 황토색의 블라인드가 창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창밖의 풍경을 모두 가리지는 못했고 푸른 듯한 하늘과 사이프러스인 것 같은 나무들의 우듬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책상 앞에 놓인 노트북의 커서가 잠시 깜박거리는 동안 흔들리는 우듬지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오니, 까만 배낭 옆에 꽂아 놓은 하얀색 텀블러 안에 있는 커피가 생각났다. 텀블러 뚜껑을 돌려 열자 커피의 따뜻함 때문이었던지 작은 ‘펑’ 소리가 나면서 손아귀에 가벼운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씁쓸한 커피 향이 내 마음에 은은한 평화를 더해 주었다.
오늘 아침, 어제 비가 왔기 때문인지 공기는 참 맑고 하늘은 높았다. 하얗고 거무레한 구름이 서로를 스쳐 가는 사이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하늘이 슬쩍슬쩍 푸르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내 키와 비슷한 높이에 있는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한 그루의 매화나무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매화나무에는 어느덧 매화꽃이 황황히 피어있었다. ‘언제 매화꽃이 이렇게 피었지?’, ‘아직 서늘한데, 많이도 피었네’, ‘요즘 좀 따뜻했나?’, ‘지난겨울 동안에도 잘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봄꽃은 그 안에 지난 겨울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봄꽃은 하루 따뜻했다고, 하루 비가 왔다고 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종종 환자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갑자기 허리가 아파졌어요”, “자고 일어나니까 어깨가 아파 팔을 들 수 없었어요.” 내가 보는 환자들은 이렇게 몸으로 말하기도 한다. “어젯밤에 갑자기 내가 죽었어요.” 하루 따뜻했다고 봄꽃이 피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갑자기 아파지고 갑자기 죽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인식하고 있지 못했을 뿐, 부지불식간에 세포들은 고생하고 있었고 염증세포가 침윤하고 있었으며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미경을 통해 보면, 때로는 안쓰러워 보이는 고생한 세포들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사람은 언제 죽는 것일까?’, ‘사람(Person)과 인간(Human)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에 이르는 병은 무엇일까?’,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은 죽음일까?’
나는 의대생들과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에게 법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전공이 ‘법의학(좀 더 구체적으로는 법의병리학)’이니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과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법의학을 가르치는 것은 당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이 죽는 것처럼 삶과 죽음, 그리고 법의학 이야기는 의학과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도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으로 현재는 부산대학교 장전동 캠퍼스에서 <법의학자와 읽는 호메로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교양 수업을 개설해 강의하고 있다. 수업 중에는 학생들이 조별로 선정한 책을 읽고 삶과 죽음에 대한 글을 작성하는 과제가 있는데, 이 책은 학생들이 제출한 글을 곱씹어 읽으면서 학생들이 선택한 10권의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법의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며 학생들에게 펜팔처럼 다시 돌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모은 것이다.
하루의 온기만으로 봄꽃이 피어나지 않듯, 우리의 삶과 죽음 역시 저마다의 계절을 묵묵히 통과해 온 긴 시간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여러분에게도 창밖의 흔들리는 우듬지처럼 잠시 마음을 누일 여유가 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생을 지탱해 온 우리 안의 ‘겨울’을 다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