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파수꾼으로 지켜온 38년,
부산대학교병원과 함께한 시간
부산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1988년,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생활을 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당시 우리 병원의 수술실은 단 8개였고, 하루 수술 건수는 20건 남짓이었습니다. 하지만 3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병원의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26개의 수술실에서 하루 많게는 100건 이상의 수술이 이루어집니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난이도가 높은 중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최첨단 장비와 시스템이 갖춰졌고, 우리 병원은 명실상부한 지역 거점 의료기관으로서 그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중증 환자들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병원의 미래를 확신하기에, 현장을 지키는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물론 38년의 시간이 늘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2024년 3월부터 이어진 전공의 사퇴로 인한 공백은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련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2000년 의료계 파업 당시에도 전공의들이 두 달 가까이 병원을 떠났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회복실 간호사조차 없던 시절이라 마취 준비부터 기록지 작성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3일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서며 몸은 고되었지만, 환자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위기 역시 만만치 않았지만, 과거와 달랐던 점은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회복실 간호사들을 비롯한 많은 의료진이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주었습니다.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동료들 덕분에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였기에 가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정년퇴직도 어느덧 2년 남짓 남았습니다. 의사가 된 후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 부산대학교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청춘을 바쳤던 이곳이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으로 우뚝 서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의 큰 행운이었습니다. 비록 현장에서 뛸 날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제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쏟고 싶습니다. 병원이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마지막까지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것이 저를 키워준 병원과 환자분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환자의 따뜻한 숨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38년. 돌아보니 그 모든 순간이 ‘생명 사랑’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부산대학교병원이 환자들에게는 가장 든든한 희망이 되고, 의료진에게는 가장 보람찬 일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 역시 마지막까지 환자의 머리맡에서 깨어 있는 파수꾼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