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비싼 화가와 제일 비싼 의사
1890년 7월 27일 프랑스 파리 근교 오베르의 어느 밀밭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복부에 관통상을 입은 고흐는 그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일 뒤 7월 29일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의 짧은 생을 마쳤다(1853~1890).
그는 평생토록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다. 살아서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 그가 세상에 팔 수 있었던 그림은 단 1점뿐이었다. 고흐 사망 100년 후 199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고흐의 작품 <닥터 가셰>가 경매시장에 올랐고 그림 경매 역사상 최고의 경매가로 낙찰되었다(그림 1). 일본의 기업가 사이토 회장이 8,250만 달러(약 1,000억 원)라는 천문학적 가격을 지불하고 새 주인이 되었다. 고흐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화가가 되었고 덕분에 닥터 가셰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의사가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경매 후 <닥터 가셰>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며 아직도 그림의 소재가 오리무중이다. 평소 사이토 회장이 고흐 그림을 너무 좋아하여 혼자만이 감상하면서 훗날 자기 무덤 속에 넣어 달라고 하였다는데 설마…. 고흐는 1890년 5월 생레미 정신병원을 나와 가셰 박사를 소개 받는다. 가셰 박사는 우울증 및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지만 유명한 화가들과도 친분을 쌓아가는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하였다. 짧지만 깊었던 그들의 만남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서 초기에는 그림에 접점을 두고 가깝게 지냈으나 점점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한다. 고흐의 원만하지 못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고흐가 가셰 박사의 딸에게 관심을 표하면서 가셰 박사가 고흐를 점차 멀리하였다고도 한다.

고흐는 30가지가 넘는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주 언급되는 질병으로서는 황시증, 메니에르병, 조울증, 뇌전증, 정신분열증, 압셍트 중독, 납 중독 등이 있다. <닥터 가셰> 그림의 하단에 그려진 화초는 강심제, 측두엽 간질에 사용되는 ‘디지탈리스’라는 약초이다. 디지탈리스를 복용하면 황시증이 생길 수 있다. 고흐 그림에 진 노랑색이 많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 논문은 고흐가 급성 간헐 포르피린증(Acute Intermittent Porphyria: AIP)이라는 헤모글로빈대사 장애 유전병을 앓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서 고흐가 동생 ‘테오’와의 편지에서 가계의 정신질환에 대한 가족력을 걱정 하였고, 반복되는 복통을 호소하면서 구충제를 자주 복용하였고, 귀를 자르는(그림 2) 괴이한 행동과 자살에 이르는 정신질환을 AIP의 주요 증상 꼽았다. 특징적인 포도주색의 소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럴듯한 이론이다.
고흐는 불과 37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열정적인 그의 예술 활동으로 2,1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마지막 2년 동안에 세상의 평가에서 벗어나 자신을 쏟아 부으며 그린 작품 수만 470여점에 달한다. 고흐는 그림 외에도 지인들과 주고받은 900여 통의 편지를 남겼다.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 그 편지를 읽노라면 고흐의 진정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고흐는 유난히 밤하늘의 별을 좋아했다. 삶을 열정적으로 마무리하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기차를 타고 타라스콩이나 루엥으로 가듯 우리는 죽음을 통해 별로 간다.
죽은 사람이 기차를 탈 수 없듯이 살아 있는 동안은 별에도 갈 수 없지.
<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
- 참고자료
- ① Vincent van Gogh and his illness. A reflection on a posthumous diagnostic exercise. Voskuil P. Epilepsy Behav. 2020:107258. ② Van Gogh's vision. Digitalis intoxication? T C Lee JAMA 1981:727-9. ③ Vincent van Gogh's illness: acute intermittent porphyria? L S Loftus and W N Arnold. BMJ. 1991:1589–1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