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이미 줄거리도 다 알고 있고, 몇 번을 본 드라마나 혹은 영화임에도 우연히 TV에 방송되면 어김없이 다시 시청하게되는 그런 작품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쇼생크 탈출’이 그런 영화입니다.
현재까지 수십 번은 본 것 같은데 왜 이 영화만 방송되면 계속 볼 수밖에 없는지 아직 그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꼭 반드시 보고 싶어 기다리는 장면은 항상 똑같은데, 바로 노인이 되어 가석방된 레드(모건 프리먼분)가 주인공 앤디(팀 로빈슨 분)가 감옥에서 탈출하기전 남겼던 마지막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적한 시골을 찾아가 앤디가 돌 밑에 숨겨 놓은 편지를 찾아 읽는 장면입니다. 편지 내용은 앤디가 탈출 후 정착한 곳으로 레드가 찾아와 주길 원하는 것인데, 그 편지에는 ‘희망은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대사라고 생각하여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중 하나입니다. 거기에 편지를 읽고 있는 장소가 주는 분위기와 오후 시간의 나른한 햇살이 주인공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저에게는 정말 없던 희망도 생기는 것 같았고 행복감과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 때는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더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나를 얽매고 있는 절망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여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것으로 역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반복해서 보다 보니 그 좋은 희망은 생각만으로는 이뤄질 수가 없었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가 될지는 모르지만 탈출하기 위해 끝까지 굴을 파는 인내와 탈출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주인공은 탈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즘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소아과 어떡하냐’ 혹은 ‘고생이 많다’는 우려와 걱정의 말입니다. 저는 어린이병원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소아 진료의 공백은 소아청소년과뿐만 아니라 소아 관련 거의 모든 과에 해당되는 상황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산대학교 어린이병원에 소아 흉부외과 교수님은 현재 두 분뿐(한강 이남에서 가장 많은 소아 흉부외과 전문의 수)이고 소아 흉부외과를 전담하는 전공의는 없습니다. 수술 후 환자 돌봄은 교수님과 중환자실 간호사에 의하여 이뤄지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은 도대체 언제 쉬시나 하는 우려가 늘 드는데, 슬프면서도 다행하게도 출산율이 감소하여 선천심기형을 앓는 아기들이 줄어 그나마 수술 건수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소아과를 비롯한 소아 진료를 전공하는 의사가 거의 없고 이런 현상은 이미 지방 거점 국립대 병원에서 수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대책 마련을 병원, 학회, 지자체, 정부 등에 요구하여 왔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야간에 소아 응급실 진료를 포기하는 병원이 늘고 있고 급기야 입원 진료를 제한하는 병원이 나오면서 이제야 원인분석이나 대책 마련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로 획기적인 방안이 조만간 마련되지 않으면 많은 어린이가 치료를 받기 위해 길바닥을 헤매는 일이 곧 현실로 다가오겠지요? 의료를 비롯한 대부분의 산업 기반이 수도권으로 더욱 집중되고 인구의 반 이상이 수도권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현 상황에서 지방의 의료 체계, 특히 소아진료 체계를 현재대로 유지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워 보입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나게 될지 모르는 소아 진료의 공백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기분입니다. 앤디가 처음 쇼생크 감옥에 들어왔을 때 이와 같은 기분이었을까요?
어느 방향으로 굴을 파야 하는지, 언제까지 파야 끝이 보이는지 알 수 없어 더 힘이 들지만 , 우리에게 끝까지 굴을 파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감옥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희망을 놓기 전에, 굴을 파던 손을 놓아 버리기 전에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저는 ‘희망은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가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실로 이뤄지질 바라며 아주 조금이라도 앞을 향해 굴을 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