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탄생>에 숨은 의학 이야기
보티첼리와 르네상스 미술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Renaissance)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한다. 더 이상 신성에 의존하지 않고 휴머니즘이 근본이 되는 인문주의가 발전되는 시기였다. 미술에서는 인문학적 생각에 젖은 화가들이 기독교 관련 주제를 뒤로하고 고전시대의 역사와 신화이야기를 원근법과 해부학적 지식을 가미하여 화폭에 담았다. 특히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메디치 가문이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많은 예술가를 후원하여 르네상스 미술의 꽃을 피우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역시 피렌체에서 태어나 미술 공부를 하던 중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위대한 화가로 거듭나게 된다. 보티첼리는 초기에 공방에서 ‘사실주의’ 기법을 배워 자연을 대상으로 감상적이고 서정적인 그림을 그렸다.
1478년 드디어 메디치가에게 벽화 제작 의뢰를 받고 인문주의 학자, 시인들과 접하면서 르네상스의 무드에 합류하게 된다. 이 때부터 보티첼리는 인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독자적인 화풍을 수립하기 시작한다. 그는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대표작으로는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 <비너스와 마르스> 등이 있다.
비너스의 탄생 <그림1>
이 그림은 미술사적으로 기독교가 아닌 인문주의 주제를 곡선의 묘미로 표현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균형과 조화를 철저히 유지하고 있는 걸작이며 르네상스 미술의 문을 연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그림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 처음으로 실물 크기의 여성 누드가 등장한다. 그림 중앙의 비너스는 조개 껍질을 타고 파도에 밀려 키프로스 해안가에 도착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꽃의 여신 ‘클로리스’가 비너스를 육지로 안내하고 있다. 그 순간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외투를 들고 그녀를 영접하고 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삼각구도를 하고 있으며 관람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 비너스의 얼굴, 봉긋한 가슴, 금발머리는 당대의 대표적인 미인형이다. 한쪽 발에 체중을 싣고 두 손으로 가슴과 음부를 가리는 ‘정숙의 비너스(Venus pudica)’ 동작은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니다. 비너스의 아름다움을 다소 과장하였지만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은 중세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과 치명적인 관능미를 뿜어내고 있다.

의학과 명화
그림 속의 우아한 비너스는 보티첼리가 마음속으로 연모하고 있던 ‘시모네타’ 라는 실존 인물이다.
그녀는 명문가 베스푸치 집안의 며느리로서 유부녀의 신분이었으나 피렌체의 뭇 남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시모네타를 칭송하지 않는 피렌체인은 진정한 피렌체인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보티첼리 역시 그녀를 흠모하면서 그의 작품에 시모네타를 투영시켰다.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녀박명의 원칙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시모네타는 22세의 아까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병사한다.
다시 그림을 보면, 시모네타를 우아하게 그리고 너무 날씬하게 그리다 보니 목이 너무 길어 8등신의 모습을 넘어 9등신, 10등신의 모습이다. 정상인은 경추가 7개 있는데 그녀는 8~9개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른쪽 가슴과 어깨에 비해 왼쪽 가슴과 어깨가 함몰되고 위축되어 있다.
병원에 가서 흉부 X선 검사를 받으면 <그림 2>처럼 보일 것이다. 무기폐(atelectasis) 정도가 심하여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폐결핵의 악화로 폐조직이 손상되어 공기 흡입이 되지 않아 신체에 산소 공급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풍선에서 바람이 모두 빠진 상태이다. 그런데 그림의 오른쪽에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들고 있는 외투가 좌측 폐 모양을 하고 있다<그림 3>. 마치 건강한 폐를 구하여 폐 이식치료(lung transplantation)를 권유하는 듯 하다.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에서 중세의 어두운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인간 중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림을 감상하는 오늘날 우리는 ‘시모네타’의 폐병이 완치되기를 소망하는 보티첼리의 간절한 맘을 읽을 수가 있다.


- 참고자료
- 1. Concealed lung anatomy in Botticelli’s masterpieces The Primavera and The Birth of Venus. Acta Biomed 2017; Vol. 88, N. 4: 502-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