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병원
생명사랑 2022. 겨울·신년
VOL.245
CULTURE&LIFE

의학과 명화
제빵사의 딸과 화가 라파엘로의 사랑

정주섭 부산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의 일생과 그의 작품 세계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전설적인 3대 화가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상냥하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또한 30대에 추기경이 될 만큼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항상 조화와 균형, 절제의 미덕을 품고 있다.

라파엘로(Raffaello Sanzio)는 1483년 북부 이탈리아 우르비노에서 아버지가 궁정 화가인 화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그는 어릴 적부터 미술수업을 받고서 천부적인 소질을 개발할 수 있었다. 미술 공부를 위해서 그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활동하고 있는 피렌체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4년간 머물면서 다빈치의 구도, 명암, 색조를 배우며 미켈란젤로의 인체 해부학적 지식을 익히게 된다. 1508년부터는 로마 교황청 화가로 활동하면서 그의 대표작인 ‘아테네 학당’, ‘시스티나의 성모’를 그리게 된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 ‘라파엘로’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의뢰받고 또 그려냈다. 3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지만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은 탓에 화려한 장례식 후 그는 로마 판테온에 묻히게 된다. 라파엘로의 죽음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반복되는 심한 고열에 시달리다가 그는 1520년 그의 생일날(4월6일)에 운명을 달리한다. 사인으로는 말라리아, 매독, 폐염 등 여러 질병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언급된 질병들은 용혈성 빈혈 혹은 만성질환 빈혈이 동반되는 병인데 당시 라파엘로가 받은 사혈 치료는 그를 회복시키기는커녕 병세를 더욱 악화시켜 죽음을 재촉한 것이다. 그렇게 라파엘로의 생이 끝나자 르네상스 시대 미술도 막을 내리게 된다. 짧은 생애였지만 라파엘로는 미술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도 있었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열정이 있었기에 미켈란젤로 그리고 다빈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거장이 될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는 그를 그라치아(Grazia: 우아한 아름다움의 화신)로 부르고 있다.

제빵사의 딸(La Fornarina, 라 포르나리나) 이야기

그림 속의 여인은 오른손으로 가슴을 떠받치듯이 일부 가리고 있다. 왼손은 다리 사이를 가리면서 ‘정숙한 비너스(Venus Pudica)’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그림 1). 자신의 남자에게 보내는 그녀의 유혹적인 시선과 미소가 그림을 더욱 관능적으로 만들고 있다. 얇은 천이 가슴 아래쪽 복부를 가리고 있지만 배꼽이 비치고 있다. 오늘날 유행하는 ‘씨-쓰루’ 패션이다. 느낌적으로 이제 막 거사(?)를 치르고 흐트러진 몸매를 추슬러 앉아 있는 모양새이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모습으로 보아 전통 유럽 민족은 아닌 듯 하다. 왼쪽 팔에는 ‘라파엘’이라는 장식 띠를 두르고 있으며 왼손 약지에는 약속의 반지를 끼고 있다. 라파엘로의 여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림 속의 모델이 바로 라파엘로의 연인이면서 뮤즈인 ‘마르게리타’(1495~1522)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금의 모로코 지역의 무어인(Moors) 출신으로 로마에서 빵을 굽는 제빵사였다. 그래서 훗날 라파엘로 제자들이 이 그림의 제목을 ‘라 포르나리나’ 번역하면 ‘제빵사의 딸’로 붙였다. 두 사람은 화가와 모델로서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12년간을 가깝게 지내면서 작품 활동도 하고 그리고 사랑도 나누었다. 라파엘로가 성모 마리아를 매우 잘 그렸는데 바로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순결하면서도 관능미를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두 사람은 열렬히 서로 사랑하였지만 두 가문의 격차 때문에 결실을 맺지못하고 ‘부적절한 관계’로 그들의 사랑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림 1. La fornarina(라파엘로, 60x85 cm, 1518~1519, 로마 국립고대미술관)

의학과 명화

흥미롭게도 작품 ‘라 포르나리나’가 Lancet이라는 유명한 의학 논문집에 발표되는데 그림의 모델 ‘마르게리타’는 유방암 환자라고 저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 의학 논문1-3의 설명대로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쪽 가슴은 너무나도 균형적이고 아름다운데 반하여 왼쪽 유방은 그림의 오른손 검지가 있는 곳에 결절이 있으며 그 부위의 피부 색도 다소 짙어 위축이 있어 보인다(그림 2). 또한 오른팔에 비해 왼팔이 두꺼워 보이는데 유방암이 좌측 겨드랑이 림프절에 전이되어 나타나는 부종으로 판단할 수 있다(그림 1). 유방암은 무통의 유방 결절로 시작되어 겨드랑이 림프절로 전이되고 뼈, 폐로 진행된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존기간이 대략 3년 정도 되는데 마르게리타는 이 그림을 그리고 3년 뒤 1522년에 죽었다고 한다. 정말 그럴듯한 설명이다. 만약 마르게리타가 부산대학교병원 암센터를 방문하여 PET 촬영을 하게 되면 ‘그림 3’처럼 보일 것이다. 동위 원소가 좌측 유방과 좌측 겨드랑이 림프절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흡수되어 비교적 선명하게 보인다.

그림 2. 라 포르나리나 부분 확대(a: 유방 결절 및 피부 변화, b: 부종 및 좌측 액와 림프절 종대)
그림 3. PET 소견(a: 유방암, b: 좌측 액와 림프절 전이, c: 심장, d: 신장, e: 편도선, f: 뇌, c~f는 정상 음영)

마르게리타는 이 세상에서 못 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라파엘로가 죽고 불과 2년 만에 그의 곁으로 떠난 것입니다. 관능적인 이 여인의 모습이 이제 아련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요즈음에는 유방암 치료 성적이 향상되어 5년 생존율이 90% 이상이지만 500년 전 비련의 여인 ‘제빵사의 딸’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었기에 오늘날 모두가 안타까운 맘으로 작품 ‘라 포르나리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1. The portrait of breast cancer and Raphael's La Fornarina. Lancet. 2002; 360: 2061-2063
2. La Fornarina: breast cancer or not? Lancet. 2003:29;361:1129
3. An epidemic of breast cancer among models of famous artists. Breast Cancer Res Treat. 2004: 84, 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