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병원
생명사랑 2021.가을
VOL.244
PNUH 보감

코로나 블루와 광복절 연휴

성시찬 前 제3대 양산부산대학교병원장

성시찬 前 제3대 양산부산대학교병원장 사진
8월 15, 16일은 광복절 연휴였고 아내의 어깨수술 후 뒷바라지를 위해 꼼짝없이 집구석에 처박혀있어야 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어디 외식도 갈 수 없어 피자를 시켜 저녁을 대체했다. 그러다 보니 재미없는 TV 앞에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유달리 눈에 띄는 장면이 들어왔다. 영국 토트넘의 우리 손흥민 선수가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멋진 결승골을 만드는 장면이었다. 손흥민의 70미터 대쉬 골이 그에게는 가장 환상적인 골이었겠지만 그날의 골 역시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골의 놀라움보다는 관중들의 열기에 엄청 놀라움을 느꼈다. 꽉 들어찬 스타디움의 수많은 인파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 마스크를 낀 사람을 볼 수가 없었기에 놀란 것이다. 그 반대되는 장면이 다른 채널의 TV 화면에서 지나갔다. 우리나라의 8·15 경축식 장면이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고 대통령 포함 수십 명이 띄엄띄엄 앉아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채널을 골프 중계로 돌렸다. 갤러리 한 명 없는 KPGA에서 선수들이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지루해 CNN으로 채널을 돌렸더니 온통 아프간 사태로 난리가 났다. 자기 나라를 탈출하려고 공항으로 몰려든 인파,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 내 휴대폰에선 재난경고 문자들이 수시로 삑삑거렸고 휼륭히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던 우리 병원의 직원감염 문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우울한 2021년의 광복절 연휴였다.

우리는 왜 유로 축구대회,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미국의 메이저리그, LPGA, PGA에서와 같이 마스크 없이 열광할 자유를 아직도 얻지 못하고 있는가? 우리는 아직도 김원웅 광복회장의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위시한 지나간 대부분의 정권을 친일정권으로 매도하는 연설을 아직도 듣고 있어야 하는가?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말로 잘 교육되고 국가시책에 순종적인 엘리트 국민이다. 이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우리 역사상 가장 번영된 국가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국가 방역에 세계적인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점에 가장 높은 단계의 물리적 방역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방역담당 지휘부의 판단 착오가 불러온 참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가 만약 처음부터 백신에도 큰 관심을 가졌더라면 사회적 거리두기의 속박은 진작 없어졌을 것이고 그만큼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짧아져 민생경제의 타격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결론은 국민들은 너무나도 성실하게 국가의 물리적 방역에 협조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지도부의 모자란 판단으로 아직까지도 국민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고 국민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우리는 훌륭한 물리적 방역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백신 조기도입만 되었더라면 미국보다도 유럽보다도 더 빨리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의료체계는 잘 정비되어있고 국민들은 훨씬 더 현명하고 협조적이니까. 나는 우리의 방역 지휘부가 백신의 중요성을 왜 인지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세 가지 중 하나다. 코로나19에 대한 이해부족, 백신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 물리적 방역에 대한 맹신, 어쨌든 중대한 판단착오다. 또한 그들은 국민들의 협력으로 이룩한 그동안의 물리적 방역성과를 그들의 성과로 자랑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는 가벼움을 보여 왔다.

망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수장인 대통령의 국가를 버리는 행태에 쓴웃음이 나온다. 승용차 4대에 돈을 실어 도망가다가 헬기에 다 싣지 못하자 일부는 버리고 갔다고 한다.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에 모인 시민들,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렸다 떨어지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하랴. 쓴웃음은 곧바로 내 가슴을 누르는 애잔함으로 바뀐다.

광복회장의 적의에 찬 친일파 언급, 그 앞에 마스크를 끼고 앉아있는 대통령... 왜 우리는 지난 36년간의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의 원인을 우매하고 비겁한 고종과 그 처가 일족이라고 말하지 않는걸까? 중국 제후국의 하나로서 600년간 은둔한 조선이 지금의 한반도 분단의 씨앗은 아니었을까? 우리를 돌아보고 우리 힘을 키우는 것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잘못인데 남을 탓하는 것은 잘못함을 반복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어느 크고 작은 단체, 국가의 운명은 그 지도자 혹은 지도부의 판단에 많은 부분 달려있다. 또한 그 구성원들의 안녕이 많은 부분 그들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인간사에서의 현실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크고 작은 단체 혹은 국가라 할지라도 그 지도자 혹은 지도부의 판단과 역량에 따라 큰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인간사의 현실이다.

부산대학교병원과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 정말 열심히 잘 하고있는 우리 지도부들을 생각하며 광복절 연휴의 갑갑함과 우울함을 달래본다. 부디 코로나19가 오래 가더라도 지치지 마시고 힘내시길...

성시찬
양산부산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교수로 재직하며, 제3대 양산부산대학교병원장(2013.05.01~2015.04.30)을 역임했다. 2019년 8월 정년퇴임 후에도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소아심장센터에서 소아심장 명의로서 현재까지 후학을 지도하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

*본 기고문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히며, 생명사랑 편집 방향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