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병원
생명사랑 2025. 가을호
VOL.260
PNUH 보감

30년의 발자취,
환자 곁에서 의사로 걸어온 길을 마무리하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 마지막 인사

이준우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교수
부산대학교 27대 부산대병원장 이정주

부산대학교병원 및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로서 30여 년간 몸담아 온 제가 정년을 맞이하며,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감회가 깊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지나온 길을 잠깐 돌아보고자 합니다.

저는 1996년부터 부산의과대학과 병원에서 기금교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30여 년간 근무를 하였습니다. 2008년에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이 개원함에 따라 이후엔 양산으로 직장을 옮겨 근무를 하였습니다. 새롭게 개원하는 병원에 근무하는 것이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라 생각되었지만, 그 당시엔 제 나이가 40대 후반이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흥미가 있었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기에 별 망설임 없이 자원을 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개원 초엔 진료에 필요한 의료 인력, 행정적 지원 등 여러 분야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 힘이 좀 들었습니다. 특히 신설 병원엔 자체 전공의 선생이 없었기 때문에 각 분야별로 교수 1명과 본원에서 파견된 1, 2명의 전공의 선생이 영상검사와 판독을 다 해야 하는 1인 2역의 역할로 몸과 마음이 무척 바빴습니다. 이러한 진료의 순간들은 언제나 긴장과 책임의 연속이었지만, 때로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개원 첫해 12월 31일의 일입니다. 영상의학과 교수회의에서 연말연시엔 교수들이 당직을 서기로 하고 구체적인 날짜는 복불복인 사다리 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웬걸, 이 날만 피했으면 하는 12월 31일에 제 당직 날이 결정되었습니다. 그 날 오후에 아미동 본원에 회의가 있어 다녀오는데,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되어 가족들과 잠시라도 식사를 하고 양산으로 당직을 서러 가면 되겠다 싶어, 막간을 이용해 가족들과 함께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남편과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는 중에 불쑥 전화가 왔는데, 장중첩증이 의심되는 어린 환아가 응급실로 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 이 난처한 상황을 어쩌란 말이냐? 고통 속에 있을 환아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환아의 부모 생각에 식사를 허둥지둥 접고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후 초음파 검사로 장중첩증을 확인하고 장중첩정복술을 시행하여 아이는 수술 없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저뿐 아니라 아이의 부모님에게도 잊지 못할 2008년 12월의 마지막 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치료를 마치니 이미 밤은 깊어져 가족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다시 병원으로 오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들어졌습니다. 그날 제 가족 모두는 저와 함께 영상의학과 당직실에서 잠옷을 대신하여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장중첩증 환아의 예후를 이야기하면서 2008년 마지막 밤을 보내었습니다. 남편이자 아빠 덕에 병원에서 당직을 서보고 새해를 맞이하는 진기한 체험을 한 제 가족들은 이 후 의사로서 임무에 충실한 아빠를 응원해 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나름의 당찬 각오와 큰 희망을 품고 교수로서의 첫발을 시작한 그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제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저의 병원 생활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동료 의료진과 직원 여러분들의 도움 덕분이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30여 년간 영상의학 분야 중 복부와 골반 영상의학을 전공하여 왔습니다. 질병의 조기 발견과 정확한 영상 진단을 통해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연장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간이식 전후의 영상 평가, 간세포암, 담도 협착 및 폐쇄, 여성생식기 암의 진단 등은 제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동안 학생들과 전공의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학생 혹은 전공의 수준에서 꼭 필요한 영상의학 지식을 잘 익히게 함으로써, 후배들이 더 나은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왔던 시간은 제게 커다란 보람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들이 저보다 훨씬 나은 의학지식과 따뜻한 감성으로 환자를 돌보며, 창의적인 연구를 이어가리라 믿습니다.

이제 저는 교단과 병원을 떠나지만, 이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은 제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를 아껴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