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는 이렇게 ···
클림트의 작품세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는 찬란한 황금빛 색채와 장식적 문양으로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부각시켜 신화 속의 여신과 상류층 여성을 주로 그린 오스트리아 상징주의 화가이다.
상징주의 미술이란 시각적으로는 구체적이지만 배후에 비밀을 숨긴 비현실적인 그림을 일컫는다.
클림트는 보헤미아 출신의 금 세공사의 아들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장식미술학교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였고 당시 오스트리아빈의 재건축 붐에 편승하여 건물의 벽화를 그리면서 그의 이름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 시절에 그린 『부르크 극장의 관객석』을 보면 그림에 대한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가 있다. 새로운 미술(아르누보)을 추구하던 그는 빈 분리파를 설립하여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의 그림은 황금빛으로 채워지고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 한 화풍으로 완성된다. 그는 빈의 카사노바로 알려진 만큼 많은 여성들과 향락적인 삶을 누렸고 또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화려한 그림들을 그려낸다. 클림트가 죽고 14명의 여자가 친자 소송을 할 정도로 에로틱한 예술활동을 누린 것이다. 많은 여성들과 교제를 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작품 『키스』에 등장하는 에밀리 플뢰게(1874~1952) 단 한 명이었다.
에로티시즘으로 대변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여성들과의 교제와는 달리 에밀리와의 교제는 끝까지 플라토닉 러브를 유지 하였다고 한다.1908년에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예술 축제의 기획을 맡아 『키스』, 『다나에』, 『아델레 블로허 바우어의 초상』등을 발표하면서 그는 황금시대의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50대까지 결혼을 하지않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계속 하지만 말년에는 그의 작품『죽음과 삶』, 『신부』에서 보듯이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화려한 황금빛은 점차퇴색하고 다소 쓸쓸한 색채의 장식으로변해 간다. 1918년 세계1차대전이 끝날 무렵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56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한다. 클림트의 죽음과 때를 같이 하여 빈 예술의 영광도,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화도 서서히 몰락하게 된다.
작품 The Kiss (그림1)
남성이 여성을 안고 볼에 키스하는 모습을 그린 클림트 절정기의 작품이다. 오스트리아 벨베데레궁의 다소 침침한 조도에 서도 작품 『키스』의 황금빛은 단숨에 관객을 매료시킬 만큼 강렬하다. 사랑의 절정을 대변하는 키스의 순간, 포옹하듯 밀착된 남녀의 에로티시즘을 묘사한 이 그림은 1908년 발표되어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클림트의 무리한 금액 요구에도 불구하고 전시회가 끝나기도 전에 오스트리아 정부가 구입할 정도였다. 두 연인이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도 보이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여자의 표정이 황홀경에 도취되었다기보다는 단지 수동적으로 안겨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관점에서 작품 『키스』를 해석할 수 있겠지만 누가 뭐래도 그림 속의 여인은 오늘날 전 세계인의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림 속의 연인은 누구일까? 남자는 클림트 자신이고 여자는 에밀리 플뢰게이다. 그러면 클림트와 황홀한 키스를 하고 있는 에밀리는 누구인가? 클림트의 동생 부인의 동생 즉 사돈 처녀이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데 법적으로 는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도덕적으로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녀가 포옹을 하면서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금빛 찬란한 그림 속에 연인 간의 복잡한 감정이 녹아 들어 있는 것이다. 상징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Kiss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의학과 명화
작품 『키스』 속 남자의 옷에는 남성을 상징하는 직사각형의 무채색 패턴이 가득한 것을 볼 수가 있고 여자의 옷에는 원형의 화려한 꽃무늬가 가득하다. 그런데 여자옷의 무늬를 자세히 보면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혈액 세포 즉 적혈구와 백혈구 세포로 보인다. (그림2) 클림트가 빈 대학교의 벽화 작업을 할 때 빈 의대에서 연구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병리면역학자 카를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를 알게 된다. 빈 의대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관심사를 주고 받았을 것이며 아마도 클림트가 병리학 현미경에 비친 혈구 세포를 보고 영감을 받은 듯 하다. 그리고 란트슈타이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적혈구, 단핵 백혈구 세포, 혈소판, 그리고 다핵 백혈구 세포를 화려 한 장식 문양으로 사용한 것이다. 란트슈타이너는 빈 의과대학에서 성공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고 ABO 혈액형을 확립하면서 훗날(1930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클림트는 작업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 중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56세의 나이로 병사한다. 1918년 세계1차 대전 기간 유럽에 파견된 미군 병영에서 처음 독감이 발생해 2년 동안 유럽 인구의 1/3이 감염되고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독감이다. 당시 군 사기 저하를 우려하여 보안이 유지되다가 중립국가인 스페인에서 처음 보도가 되어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되었다. 14세기 중기 페스트가 유럽 전역을 휩쓸었을 때보다도 훨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해 지금까지도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린다. 클림트도 스페인 독감의 거센 광풍을 피하지 못하고 감염되어 1918년 2월 6일에 운명을 달리 한다. 그러나 거장 클림트가 세상을 떠난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작품『키스』에 대한 환상은 시간이 갈수록 그 파장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그림3)

- 참고자료
-
1. Eight odd details hidden in masterpieces (https://www.bbc.com/culture/article/20190103-eight-odd-details)
2. Helioart Report No.177 March week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