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병원
생명사랑 2022. 봄
VOL.246
함께 걷는 삶

나누는 자가 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부

정현숙 기자
산부인과 김기형 교수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긴 세월을 병원과 함께, 든든하게 산부인과를 지키고 계시는 김기형 교수님을 만나 뵙고 따뜻한 기부의 마음을 듣고자 합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기부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계기로 기부를 결심하셨습니까?
저의 작은 기부에 인터뷰 기사를 적으려니 조금은 쑥스럽네요. 제가 평소 기부를 잘하던 입장이라면 자신 있게 기부에 대한 소신을 밝힐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면서 저는 스스로를 경제적인 부분에 비교적 초연하다고 생각하였고, 소신 있는 환자진료와 자유로운 연구 활동에 만족하였습니다. 하지만 매달 월급이나 연말정산 시 세금으로 더 나가는 것들, 진료/연구 성과급 등등, 마음 한편에는 돈에 참 예민했던 것 같아요. 또 피곤할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하는데 충분히 금전적으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병원이나 학교에서 ‘뭐 하나 더 받아 갈 것이 없나, 놓치는 건 없나, 할인혜택으로 주어지는 건 없나?’ 하며 챙겨보던 입장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의 직장생활 속에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인턴 때부터 지금까지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다는 것, 외래진료 때나 병동, 수술실에서 늘 옆에서 도와주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 두 자녀가 이 병원에서 임신이 되고 태어난 것, 아내, 장인, 장모님이 모두 이곳에서 수술을 받아 건강을 회복했던 것 등 참 많은 고마운 일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던 중 제가 2021년 11월에 전립선암을 진단받게 되었고 수술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일해 오면서 이미 잘 아는 병원과 의료진을 믿었고, 힘이 되어준 약속말씀이 있었고(신명기 7:15,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 원장님과 많은 분들의 위로와 지지, 기도가 있었습니다. 스펄젼 목사의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 라는 말도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부정을 거쳐 수용까지 긴 5단계를 거치지 말고, 그래, 이 상황에서 나는 미리 감사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성경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사도행전 20:35). 나누는 자가 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그때 제게 들었지요. ‘감사’와 ‘기쁨’이라는 두 생각에서 출발해서 작은 기부를 하게 된 것 같아요.
김기형 교수님께 기부란 어떤 의미입니까?

글쎄요. 오히려 병원 내 기부보다는 매체에서 유명한 연예인들의 기부에 대해 자주 듣곤 했고, 독지가의 통 큰 기부에 대해 듣곤 했었지요. 병원을 오가며 Donation wall에 이름이 기록된 분들을 보면서도 나와는 거리가 먼, 넉넉한 분들이나 잘 나가는 분들이 하는 것이라는 좁은 생각이 있었지요. “내가 환자들에게 치료만 잘 해주면 되지 뭐...” 라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좋겠어요. 이제 기부란 어떤 의미일까 돌아보면, 나중심의 생각에서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내게 중요했던 것이 남에게도 중요하다는 것, 내게 필요한 것이 남에게 더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기부란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의료인이기 때문에 기부금이 많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절실히 느끼실 거 같습니다.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되기를 바라십니까?

병원에서 참 어려운 환자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각각 나름대로의 사정들이 다 있겠지요. 최근에 진료한 난소암이 재발한 할머니는 아들이 주식으로 많은 돈을 날리고 집까지 넘어갔다는 말씀을 울먹이며 하셨고, 동남아에서 온 재발성난소암 젊은 여성은 항암제 비용 때문에 제때 항암치료를 못하고 비용을 마련해 와서 치료하고, 항암치료 중간에 일을 해서 다시 비용을 마련해서 치료받으러 오던 경우를 보았습니다. 누군가의 건강 회복에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들이 없었으면 좋겠고, 병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만, 범위를 많이 넓혀 그들의 딱한 사정들이 잘 받아 들여 지면 좋겠어요.

오랜 시간 동안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산부인과 의사는 많이 힘들 거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잖아요. 산모와 태아의 두 생명을 돌보게 된다는 점, 피(출혈)를 많이 보게 된다는 점, 분쟁의 소지가 많을 것이라는 점 때문에 가지게 되는 외부의 시선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극적인 호전 경과를 보여 해피엔딩인 경우가 참 많아요. 골반 내종양으로 산더미처럼 부른 배가 수술 후에 회복되어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건 산부인과 의사로서 느끼는 굉장한 보람이지요. 기억에 오래 남는 경우라면 부인암 환자를 진료하면서 난소암 4기, 자궁경부암 4기 환자들이 염려와는 달리 치료 후에 건강해져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보람이 있고 기억에 남지요.

올해를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지요. 올해의 소망을 말씀해 주세요

참 개인적인 소망입니다만 제가 수술 후 첫째 해를 보내고 있잖아요. 저의 건강이 온전하게 회복되어지고, 생활 습관이 재정립 되는 것이 우선이겠죠. 그리고 제가 수술 받은 경험으로 다른 환자들을 진료할 때에 환자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의사가 되어가는 것이 다음 소망입니다. 성경에도 내가 받은 위로로써 다른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한다는 말씀처럼 환자들을 돌볼 때에 깊이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의사로 제가 변화되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기부를 망설이는 다른 분들께 독려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은 제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좀 고민이 되네요. 저도 기부의 발걸음을 이제 막 내딛었잖아요. 제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어떤 형태이든, 어떤 크기이든 기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서 말씀드린 ‘감사’와 ‘기쁨’, 이 두 단어를 실천하고 경험하는 것이지요. 제가 일하는 직장 속에서 더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찾고 행복해짐으로 기부를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나누면서 얻게 되는 기쁨도 더 누리고 싶어요. 질문처럼 기부를 망설이는 분이 계시다면 꼭 저와 같은 계기가 아니더라도 작은 실천으로 옮겨보시면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