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사람들

우리 모두는 지난해부터 새 봄을 맞은 지금까지 1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공통의 병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발생한 코로나 블루라는 새로운 병명의 우울증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어려운 시기일수록 일상에서의 작은 기쁨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이웃과 함께 공유하며 향기를 선물하는 일은 작은 것을 돌이켜 큰 데로 나아가는 회소향대(廻小向大)의 마음이랄 수 있다.
나에게는 긍정적 삶의 자세를 갖도록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님과 좋은 벗들, 주변인들이 많아 그 누구보다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크나큰 행운에 늘 감사해 하며 살아간다. 그중 몇 가지 사례의 큰 감동을 준 분들을 소개하려 한다.
어떤 보이지 않는 선업의 결과인지, 부족분을 채우라는 경책의 의미였던지 능력이 모자란 나에게 2004년 1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건립본부장이라는 묵직한 소임이 맡겨졌다. 여러 가지 업무를 진행하던 중,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변의 기부자들은 새 병원 건립에 큰 도움이 돼 주셨고, 그분들과의 일화는 두고두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회자되고 있다.
2005년 12월로 기억되는 일이 있다. 지인의 소개로 나보다 약 10세 연상인 환자를 만나 질환을 상담, 수술을 주선하게 되었다. 마취와 수술 후 통증치료 등을 담당하게 된 것이 그분과의 직접적이며 적극적인 인연이 된 계기였다. 환자는 수술 후 호전되어 퇴원을 하였으나 약 6개월 후, 다른 질병으로 재차 입원하여 다시 만나게 되었다. 지속되는 투병생활로 우울증과 불안감 등은 환자를 더욱 힘들게 했다. 하여, 자주 이야기도 나누며 위로를 해 주었다.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었고 당연 그래야만 했다. 환자는 점진적으로 안정을 되찾았고 퇴원 후 투병생활을 극복, 긍정적인 모습으로 일상의 삶을 이어가게 되었는데 그 감사의 인사를 내게 보내오는 것이었다.
그분은 자갈치 시장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었으며 언제나 수수한 옷차림과 생활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2006년 7월, 지인을 대동하여 나에게 선물을 하겠노라며 노란색 서류 봉투를 들고 건립본부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그분은 서류만 두고 곧바로 돌아갔고 직원들과 함께 봉투 속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놀랍게도 봉투 속에는 부경대학교 근처의 건물(당시 시가 15억 전후) 등기서류, 기부증서, 가족동의서 등이 동봉되어 있었고 아무런 조건 없이 새 병원 건립에 사용되기를 바라는 짤막한 메모가 적혀있었다.
병원 측과 의논하여 환자분을 만나려 했으나 만남을 꺼려하였고 결국 그분의 의사대로 양산부산대학교병원 건립에 사용하게 되었다.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국제회의나 세미나, 학회 등에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최신식 강당인 ‘모암홀’이 바로 그분의 이름을 따 무주상보시의 기부를 잊지 않기 위해 지어진 공간이다. 모암 선생님이 베푸신 향기는 주변으로 소리 없이 번져나가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의 효율적인 운영에 큰 도움이 된 사례이다.
그런가 하면 기부자 중 다른 한 분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마음을 내어, 자신이 소유한 재산의 전부인 양산 시내 상가 한채를 힘든 치료받는 환자들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연세가 있는 분이어서 자식들의 의견과 당신 사후에 기증하셔도 된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7년 막무가내로 소유권을 병원으로 이전하여 어린이병원의 ‘새싹홀’로 이름 지어진 강당이 바로 그 양산의 박영옥 여사님의 기부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 한 분은 외국의 힘든 환자와 수학하려는 분들에게 베풀어 달라며 자신이 가진 큰 건물을 자식들에게 전혀 물려주지 않고 기부하신 원만성 고순화 여사님(3명의 자녀에게 동의 받음)으로 병원 측에 참으로 따뜻한 기부 사례를 남기신 주인공 중 한 분이시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이렇듯 지나가는 삶 속에서도 그분들과 같은 이들이 전하는 진리, 사랑, 선행, 환희는 꽃향기 처럼 번지어 절로 주변을 물들인다. 이처럼 저마다의 향기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으며 이는 우주의 향기가 되어 코로나 블루와도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 준다. 이 봄날, 더욱 감사해지는 얼굴들이 오늘은 더욱 궁금하다. 앞의 두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고 남은 한 분도 요양 중이어서 허공에라도 전해질 감사의 인사를 모두에게 정중히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