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병원
생명사랑 2026. 신년호
VOL.261
우리가 몰랐던 부산이야기

죽음에서 삶으로,
아미동과 부산대학교병원

글 이창호 기자
1953년경 스웨덴 의료 지원단으로 온 잉바르 스벤손이 촬영한 아미동 비석마을(사진 우측)
왜관, 부산 개항의 문을 열다

아미동의 역사는 부산의 개항과 함께 시작되었다. 1866년(고종 3년) 동래부 사하면 부민리에 속했던 이곳은 1896년 부산부에 편입됐다. 17세기 무렵 조선과 일본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항구의 안전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의 요청으로 두모포에 처음 왜관이 세워졌고, 1678년(숙종 4년)에는 초량으로 이전됐다. 1876년 조선과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면서 부산이 개항되자, 일본인들은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듬해 초량왜관을 중심으로 약 11만 평 규모의 전관거류지가 조성됐다. 이곳은 일본인만 거주할 수 있는 지역으로, 행정권과 경찰권이 일본 측에 주어지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지금의 광복동 일대는 상업지로, 대신동은 주거지로 조성됐다.

1909년 아미동 모습
곡정, 그리고 까치고개

일본인들이 부산에 오래 머물며 장례 문제가 현실이 되자, 복병산(지금의 메리놀병원 뒤 남성초등학교 일대)에 있던 공동묘지는 1905년 당시 곡정(谷町)이라 불리던 아미동으로 옮겨 졌다.

그 시절 일본은 화장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대신동에 있던 화장장도 함께 이전되었다. 1928년에는 장례식과 제사를 위한 장제장이 새로 세워졌고, 화장장도 그 근처로 옮겨졌다.

화장장의 연기가 골짜기를 덮고 제사 음식 냄새가 퍼지면서, 까치들이 몰려 들었다. 사람들은 그 고개를 ‘까치고개’라 불렀다. 1957년 화장장이 당감동으로 이전되면서, 곡정의 시간은 막을 내렸다.

판자촌, 그리고 비석마을의 탄생

1910년대 조선총독부는 식민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토지조사 사업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농민들이 경작지를 잃었고, 1920~1930년 대의 잦은 가뭄은 그들을 도시로 몰아넣었다. 부산은 항만과 도로, 철도 건설로 노동 수요가 많았지만, 가난한 조선인들이 살 집은 없었다. 평탄한 도심의 땅은 대부분 일본인의 소유였고, 임대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사람들은 산비탈을 깎아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형성된 마을이 영주동, 초량동, 대신동, 아미동 일대다. 특히 아미동은 화장장과 묘지가 있던 자리여서 가장 열악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은 피란민으로 넘쳐났다. 정부는 수용소를 세웠지만, 도시의 수용 한계는 이미 초과했다. 사람들은 빈 땅마다 천막을 세우고, 묘지 위에도 집을 올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많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남은 자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묘비가 기둥이 되고, 비석이 디딤돌이 되었다. 그렇게 비석마을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공동 우물조차 없었고 하수도도 없었다. 부평동까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물을 나르고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사람들은 그저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텼고 결국 살아 남았다.

생명의 터, 부산대학교병원

1877년 용두산 아래에 세워진 제생의원은 1885년 부산공립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36년 병원은 아미동으로 이전해 부산부립 병원이 되었고, 1949년에는 부산시립병원, 1956년에는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되었다. 그리고 1994년 현재의 부산대학교병원이 문을 열었다. 죽음을 품었던 땅 위에, 생명을 살리는 병원이 들어섰다. 아미동의 시간은 그렇게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졌다.

1936년 부산부립병원 본관(부산대학교 의학역사관 소장)

아미동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시대를 견디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끈질기게 버텨 왔다. 묘지 위에 집을 짓고, 비석 곁에서 밥을 지었던 그들의 삶은 부산의 가장 치열한 생존 기록이다. 이제는 기억하는 이조차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우리가 몰랐던 부산 역사의 한 페이 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 우신구, 『아미동 이야기: 포개진 삶, 겹쳐진 공간』, 국립민속박물관
  • 부산광역시 시사편집실, 『아미동 비석마을 사람들 이야기』
  • 양흥숙, 「접경지 동래부를 읽는 방법, 왜관 밖에서 만난 일본인」, 2024.